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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아이들과 함께한 <안녕, 인문학!>

Jeongjoo Lee 2016. 1. 25. 00:53

영란여자중학교에서 2015. 5.11일부터 6.11일까지 주 1회 총 4회에 걸쳐 진행되었던 <안녕, 인문학!>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서울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자오나 청소년센터와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장소에서 많은 강의를 해왔지만, 이번 강의는 유독 기억에 남는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지난 모든 강의를 통틀어서 가장 힘든 강의였다고 할까요? :) 그만큼 개성이 강한 학생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사실 강의를 했던 학생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늘 고민이 많습니다. 이런저런 유형의 학생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칫 그 학생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심어줄 수 있으니까요. 톨레레게라는 이름으로 여러 대상의 청소년을 만나고 있지만 일일이 이들의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짧은 글을 통해 이번에 만난 학생들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 작은 경험을 통해 이 아이들에게 조금은 더 따듯한 태도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왜 여우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을까' 강의 현장>


영란여중에서 만난 학생들은 말 그대로 ‘중력을 거스르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사회에서 흔히 ‘비행’을 한다고 말하는 학생들이었죠. 개인적으로 인문학을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모든 사회문제에 적용하고 치유하기를 바라는 낭만적인 기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배가 아프면 내과에 먼저 가서 치료를 받아야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않고서 다른 전문가에게 배가 아프니 병을 치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인문학이 제아무리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도 모든 영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 의뢰가 처음 들어왔을 때도 이러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어 망설였습니다. 다만, 회의적일지라도 실패 또한 소중한 경험이고, 현장을 직접 겪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무중력 아이들을 만나보기로 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


<'업!' 강의 현장>


냉정하게 말해서, 인문학 수업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수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고, 난감한 에피소드들도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날 학생들이 저희에게 보여준 신뢰와 자기 삶에 대한 기대는, 이런 방식으로의 만남과 경험이, 비록 그것이 꼭 인문학적 주제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수료증을 받을 때, “중학교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이런 걸 받아본다”며 설레 했던 학생들의 반응과 표정은, 겉은 거칠지만, 이 학생들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어하는 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단지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칭찬과 성취의 기회마저 빼앗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왜 왕비는 공주에게 독이든 사과를 주었을까' 강의 현장>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오냐오냐'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혼을 내야 하겠죠. 하지만 이 엄격함의 잣대가 단지 중력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배가 되는 것은 차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은 굳이 인문학 수업이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반대할 수 있고, 또 반대해야만 하는 편견입니다. 


4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이들이 무엇을 얼마만큼 배웠을지 궁금합니다. 사실,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해도 괜찮아요 :) 다시 만나자고 따듯하게 인사를 건넸을 때의 마음,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고 인정받던 순간의 기쁨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할 테니까요. 


오늘의 기억이 가능한 오랫동안 이 아이들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해줘서 고마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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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주 / 톨레레게 연구원 

원문 작성일: 2015.6.30

원문 보기: http://tollelege.org/xe/blog/16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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