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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길들이기, 그린 인문학 첫 수업

Jeongjoo Lee 2016. 5. 2. 14:51

@ 송석복지재단 혜화교육실에서 진행된 그린 인문학 첫 수업, 피노키오 길들이기


지난 4월 2일, 송석복지재단과 함께하는 <그린 인문학>이 송석혜화교육실과 문래청소년수련관에서 각각 진행되었습니다. <그린 인문학>이라는 테마로 첫 수업을 진행했는데요, 자칫 지루한 수업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에코워커(ECO-worker)’ 친구들이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 주었습니다! 


첫 수업의 제목은 ‘피노키오 길들이기’였습니다. 수업의 소재로 삼은 피노키오 이야기는 동서를 막론하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널리 알려진 동화죠.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콜로디가 쓴 《피노키오의 모험, Le adventure di Pinocchio》은 사실, 세부적인 이야기 내용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특징이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특징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있죠.


@ 2013년 독일에서 제작된 <Pinocchio> 에니메이션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는 어찌 보면 꽤 정직한 편에 속합니다. 거짓말을 숨기지 못하고, 매번 길어지는 코를 통해 거짓말을 고백하니까요. 하지만 만약 거짓말을 해도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피노키오의 거짓말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비록 문학적 상상력은 사라져 버려서 동화의 매력은 반감되고 말겠지만(코가 길어지지 않는 피노키오라니!) 어쨌든 철학적으로는 꽤 흥미로운 질문이 던져 졌습니다 :)


“코가 길어지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피노키오의 거짓말을 구별할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 피노키오들은 동화 속 피노키오와 달리 거짓말을 해도 코가 길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코가 길어지지 않는 피노키오들의 거짓말에 매번 속을 수밖에 없는 처지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코가 길어지는 마법의 도움 없이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그린 인문학>의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이것, 곧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였습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준 학생들 :)


“우리는 어떻게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을까?”


수업은 전체적으로 특정한 사례들을 가지고 참/거짓을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일상의 사례에서부터 문학 작품 및 여러 시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비교적 광범위한 상황을 다뤘죠. 마치 퀴즈 문제를 풀듯 학생들은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코가 길어지는 마법 없이도 거짓말을 알아차릴 수 있는 도구를 경험할 수 있었죠. 바로 ‘추론적 사고(reasoning)’ 또는 ‘논리적/비판적 사고(logical/critical thinking)’라고 불리는 인간의 생각 도구를 말입니다.


우리는 왜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할까? 나아가 어떻게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이번 수업에서는 이 문제를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논리학이라는 딱딱한 표현 없이 말이죠. 비판적 사고는 오랜 시간과 연습을 필요로 하는 만큼 단 한 번의 수업을 통해 배우고 습득할 순 없습니다. 이는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마법을 기대하는 것과 같죠. 하지만 이 한 번의 수업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피노키오들을 길들여야 하는 우리의 책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적어도 비판적 사고를 위한 훈련 과정을 견뎌낼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우리는 정교하고, 교활하고 악의에 찬 거짓말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했을까요? 한나 아렌트가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듯, 우리는 충분히 ‘생각하는’ 인간이었을까요? (…) 우리가 충분히 생각하는 인간이었다면, 나와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로 수백 만의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생각하는 인간이었다면, 어린 소녀들을 데려다가 성노예로 삼는 파렴치한 짓을 하지도 않았을 테고요. 우리가 충분히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를 규정하고,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한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정도의 차이를 가지지 않을 겁니다. (…) ‘충분히’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말, 글, 행동 또는 제도, 법, 관습, 사건 등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밝히기 위한 충분한 숙고를 포함하는 사고입니다. 충분히 생각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를 망가뜨리는 거짓말을 결코 용인하지 않습니다.” (수업 중에서)


꽤 머리가 아팠을 텐데(!) 끝까지 노력해줘서 고맙습니다. 

다시 만나길 기대하죠 :)


이정주 연구원

jeongjoolee@tollele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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