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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Blues), '사람'을 노래하다 수업 후기

Jeongjoo Lee 2016. 12. 20. 01:11

지난 12월 3일, 송석 복지재단 혜화 교육실에서는 안녕 인문학 시즌 3의 일곱 번째 주제인 ‘블루스, 사람을 노래하다’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 송석 혜화교육실.


‘블루스(Blues)’란 현대 서양 대중음악 장르 중 하나로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R&B(Rhythm and Blues)라고 불리는 장르는 들어봤지만, 리듬(Rhythm)이 떨어져 나간(?) 블루스(Blues) 음악은 아마 청소년들이 들어본 경험이 거의 없거나 우연히 들었더라도 어떤 느낌을 전달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 블루스 음악이 현대 서양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고, 단순한 음악 이상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한 번쯤 귀 기울여 듣고 싶은 흥미가 생기지 않나요? :) 


@ 영화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2013). 노예로 살아야 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모습을 다룬 영화


블루스 음악을 이해하려면, 길게는 18세기 초 짧게는 19세기 말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북미 식민 사회(North American colonies)에서부터 독립된 미국 사회(The United States of America)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의 모습을 긴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단, 그 초점을 ‘정복자’가 아닌 ‘정복당한 자’의 이야기에 맞춰야 하죠. 여기서 말하는 정복당한 자는 토착민(Native American)이 아닌 ‘속박당한 자’의 의미가 강한 아프리카계 미국 노예들(Slaves in America)을 지칭합니다. 그렇습니다. 블루스 음악은 ‘노예(slave)’의 음악에서,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노예의 노랫소리에서 파생된 음악입니다.


@ The Atlantic slave trade: What too few textbooks told you - Anthony Hazard


노예로 살아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은 한마디로 비참했습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품으로 팔리고, 주인의 부와 편의를 위해서 사용될 때만 가치가 인정되었죠. 수확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는 실수를 하거나 주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 등으로 매질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폐기되듯 노예들은 동등한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존중받지 못하고 그저 주인이 구매한 상품이자 도구처럼 살아야 했죠. 그뿐만 아니라 고유의 문화와 역사, 전통과 단절됨으로써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고 대변할 토대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개인이 문화와 역사, 전통과 단절될 때, 개인은 ‘소외’를 경험합니다.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자신이 잘나서도, 단지 생물학적으로 인간종에 속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한 개인이 인간으로서 갖는 가치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속한 문화와 전통과 역사의 표징이자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나’의 존재는 인류 공동체에 있어 중요하고 숭고한 의미를 지닙니다. … 노예가 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자신들 고유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위협받고 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출처: Wikimedia Commons. 1850년, 남북으로 갈린 미국의 정치 현황


이러한 속박된 삶에서 노예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은 그저 온종일 목화농장에서 일하고, 그 과정에서 노랫말을 흥얼거리는 게 전부였을 테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 단순한 활동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장려되던 노랫소리가 노예가 겪는 여러 경험을 반영하면서 점차 공동체가 교감하는 공감의 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죠. 1863년과 1865년 각각 노예 해방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과 수정 헌법 제 13조(Thirteenth Amendment to the United States Constitution)를 통해 미국 내 노예 제도가 폐지되면서 노랫소리는 목화농장을 벗어나 마을로, 대도시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요(work song) 수준에 머물렀던 노랫소리는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가 접목되면서 비로소 음악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죠. 여기에 19세기 초중반 음반산업이 발전하면서 블루스 음악은 가장 ‘핫’한 장르로 사실상 대중음악 시장을 이끌었습니다. 블루스 음악에 영향을 받아 리듬 앤드 블루스(Rhythm and Blues)와 로큰론(Rock' n Roll)이 탄생했고, 재즈(Jazz)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죠. 그뿐만 아니라 미국 내 팝(Pop)의 역사를 말할 때도 블루스는 절대 빠질 수 없는 뿌리(Root)로서 설명되곤 합니다. 잔혹한 매질과 억압 속에서 탄생한 노예의 음악이 서양 대중음악을 정복한 아이러니한 역사가 아닐 수 없죠.


블루스는 ‘나’의 경험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솔직하고, 공감적이죠. 노래하는 사람의 감정과 경험, 더 나아가 삶 전체가 유사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더 긴밀한 교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블루스는 ‘나’의 경험임과 동시에 ‘공동체’의 경험이 되는 것이죠. 

Martin Scorsese Presents The Blues (Trailer).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제작한 블루스에 관한 다큐멘터리(총 6부작)


블루스를 통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인간으로서의 ‘개인’을 회복했고, 단절됐던 ‘공동체’를 부활시켰습니다. 곧 블루스를 통해 ‘사람’으로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체계화된 집단 이념이나 사상, 보편적 담론 등을 공동체에 속한 개인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함으로써 이뤄낸 결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블루스의 관심은 한 개인의 경험과 삶을 진실하게 노래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블루스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이론, 사상 따위가 아니죠. 블루스는 단편적으로 내려오는 각각의 전래동화를 한 데 묶은 ‘이야기 집’과 같습니다. 이야기 집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오직 각각의 고유한 개별적 이야기들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기에 각각의 개별적 이야기들을 어느 것 하나 희석하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죠. 블루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루스를 통해 연주되는 한 개인의 슬픔과 삶은 어떤 공통된 이념으로 환원되지 않고, 별다른 여과 장치 없이, 내 귀에 바로 와 닿아 타인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동시에 내 감정과 경험을 투영합니다. 말하자면, 블루스는 ‘개체들 고유의 삶에 관한 이야기의 총체’인 셈이죠.


@ 송석 혜화 교육실


이러한 음악은 상품으로서만 소비되지 않습니다. 그저 돈벌이 수단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한 시대를 반영하고, ‘나’와 ‘공동체’의 슬픔을 위로하고, 정체성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문화를 만들고 공동체를 결속시킵니다. 지금,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음악은 어떤가요?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나요? 하루에도 몇백 개씩 음원이 쏟아져 나오고, 하루가 달리 차트에 오르내리는 음원의 풍요 속에서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는 자신이 어쩐지 조금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 '블루스의 왕' 비비 킹(BB King)과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블루스 협연


jeongjoolee@tollelege.org

이정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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